‘세계 1위 레스토랑’ 노마(Noma)에는 매년 100만 건의 예약이 몰린다. 인구 500만의 덴마크에서 노마의 인기는 ‘노마 이코노믹스’라고 불릴 정도다. 한식 전문가 커뮤니티의 수장, 최정윤 셰프는 그런 미래를 꿈꾼다.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 사진 강태훈
‘한식 세계화’라는 말은 사어(死語)처럼 여겨진다. 이 말이 국정과제로 다뤄지던 2010년과 비교하면, 현재 관심도는 ‘0’에 수렴한다(구글 트렌드 집계).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던 당시 정부의 다짐은 공염불에 그쳤고, 세금 낭비 논란이 뒤따랐다.
최정윤 셰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때라도 시작했던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화가 단번에 터지느냐”는 것. 다만 정부의 역할은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식학교’가 그중 하나다. “미식 강국으로 뜬 스페인과 덴마크도 연구·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 셰프는 세계 최고 요리과학 기관으로 꼽히던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에서 전 세계 미식 경쟁의 판을 익혔다. 한때 미식 트렌드를 휩쓸었던 ‘분자요리’가 이곳에서 나왔다. 그는 2010년 샘표의 우리맛연구중심 헤드셰프를 맡으며 스페인에서 익힌 연구 생태계를 한국에 이식했다. 2022년에는 한식 전문가 커뮤니티 ‘난로회’를 꾸렸다. 이듬해 난로회는 사단법인 ‘난로학원’이 됐다.
그가 다시 한번 한식 국제화를 들고 나온 건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뉴욕의 한인 레스토랑 아토믹스(Atomix)가 2022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W50B) 33위에 오르고, 그해 뉴욕의 미슐랭 가이드에는 한인 레스토랑 9곳이 수록됐다. 그러자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셰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W50B는 미식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라며 “흐름이 왔다”고 말했다. W50B의 한국·중국 지역 부의장인 그는 올해 3월 아시아 행사를 서울에서 여는 데 힘을 보탰고, 4월엔 세계 1·2위 레스토랑 셰프들을 초청해 한식 연구 행사인 ‘난로 인사이트’를 연다.
그는 일본의 스시에 대적할 만한 한식 브랜드로 한국의 고기구이, ‘코리안 바비큐’를 꼽았다. ‘누구나 할 줄 아는 고기 굽기가 대수냐’는 의문이 대번에 나올 법하지만, 그가 연구한 코리안 바비큐의 깊이와 폭은 대중의 상식을 넘는다. 그는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코리안 바비큐 전문가 자격, ‘난로 그릴 마스터’ 민간자격을 만들었다.

Q. 고기구이 전문가를 키우신다고 하셨을 때 긍정적인 반응만 있진 않았을 것 같아요. 호텔 주방도 비어가는 판국이니까요.
그런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고기를 잘 몰라요. 스테이크 굽는 것만 배웠죠. 서양에서 쓰는 부위는 한정적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일두백미(一頭百味)’라고 해서 한 마리의 소에서 백 가지 맛을 즐긴다고 하잖아요. 부위마다 자기 기름으로 구웠을 때 맛있는 부위가 있고 아닌 부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소갈비는 자기 기름으로 구우면 누린내가 나요. 차돌박이는 자기 기름으로 구워야 맛있고요.
부위에 따라 불판의 쓰임새도 달라야 해요. 차돌박이는 불판에 뚫려 있는 불 구멍이 작아야 하고요. 기름이 어떻게 빠지느냐에 따라서도 고기 맛이 달라집니다. 한식 불판의 원형인 ‘전립투골’부터, 정말 다양한 모양의 불판을 선조들이 만들어 왔어요. 가운데가 오목한 우래옥의 소불고기판이 그렇죠. 불판의 기울기, 구멍의 숫자, 구멍의 방향, 이런 요소가 다 맛에 영향을 줘요. 이걸 분석해서 맛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게 요리과학 연구의 목적입니다.
전립투골: ‘전립투(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불판에 여러 재료를 섞은 요리. ‘전골’의 원형이다. 움푹 들어간 볼에는 채소를 데치고, 가장자리에는 고기를 구우면 고기 육수가 채소 육수로 흘러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
Q. 한식의 대표 격은 비빔밥·불고기인데요. 왜 고기구이에 주목하셨습니까?
최근 식문화의 핵심 이슈가 지속 가능성이에요. 육식이 과했던 서양에선 식물성을 강하게 좇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속 가능하려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균형이 깨지면 안 돼요. 한식에는 조화와 균형이 있어요. 코리안 바비큐에는 고기만 있지 않죠. 고기와 채소를 절반씩 구성합니다. 한국식 밥상 자체가 그래요.
그리고 밥상머리 교육에서 꼭 나오는 말이 있잖아요. “골고루 먹어라.” 이거야말로 비스포크입니다. 하나만 먹는 게 아니라 고기와 채소를 페어링해서 먹는 문화예요. 내 중심으로, 내가 디자인하는 경험을 중시하는 지금의 식문화와 한식이 잘 맞습니다.
Q. 스시와 코리안 바비큐의 차이는 뭘까요?
스시는 원래 일본에서 길거리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스시집에 들어가면 향부터 다릅니다. 조명을 은은하게 깔고요. 매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서사를 만들어요. 셰프가 배우, 스시 바가 무대, 그리고 레스토랑이 극장이 되는 셈이죠.
코리안 바비큐도 (맛을 넘어) 서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한식 경험을 바탕으로 한식을 브랜딩해야 해요. 예를 들어 굽기 전 생고기 상태를 보여주는 문화는 세계 고기구이집·스테이크하우스를 통틀어 한국에만 있어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다가 실수하면 다시 만들면 돼요. 그런데 코리안 바비큐는 그럴 수 없죠. 영화와 연극의 차이와 같은 겁니다. 게다가 10~15초 간격으로 뒤집어야 하고, 그때 굽는 온도를 잘 통제해야 합니다. 상당한 테크닉이에요.
서사를 강조하는 그의 생각은 ‘난로회’의 이름과 운영에 배어 있다. 난로회는 조선 후기 양반들의 연회 문화 중 하나였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1849)에는 “음력 10월 초하룻날, 화로 안에 숯을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쇠고기를 기름장 등에 양념한 후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18세기 연암 박지원과 정조의 글에도 ‘난로회’가 등장한다. 단원 김홍도는 눈 내린 밤 양반들이 연회를 벌이는 모습을 그림 〈설후야연(雪後夜宴)〉에 담기도 했다. 최정윤 셰프는 “난로회를 즐겼다는 정약용과 박지원은 ‘조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던 유학파”였다며 “그 시대의 힙스터(hipster, 특정 문화 코드를 공유하는 젊은 세대)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옛 난로회처럼, 최 셰프는 모임 때면 각 분야의 학자와 예술가를 초청한다. 지난해 9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기간엔 박서보 화백을 초청했다.
서사를 강조하는 최 셰프의 철학은 스페인의 요리과학연구소에서 배워온 것이다. 그는 “이전까지 요리를 잘하려면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연구소에 가니 음식문화학자, 농부, 과학자, 심지어 음악감독·영화감독·건축가가 오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그는 “미식 문화는 셰프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Q. 스페인에 가게 된 계기가 있다면.
30대가 되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세계 최고인 곳에 가보자. 전 세계 최고라는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 그리고 이곳의 오너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존재였거든요. 2007년 그분이 알리시아 재단(Alicia Foundation)을 만들 무렵 제가 갔어요. 재단 산하에 요리과학연구소가 있었죠. 세계의 레스토랑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스페인이 미식에서 어떻게 전 세계 최고가 됐는지 알고 싶었어요. 전 세계에 미식 문화를 퍼뜨린 프랑스·이탈리아를 제치고 스페인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을 석권하고 있었거든요.
대표적인 게 분자요리(음식의 질감·조직·조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을 낸 요리)였어요. 분자요리는 프랑스에서 시작됐는데요, 거기에선 전통 요리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등한시됐어요. 그사이 아드리아가 분자요리로 스페인 요리를 일으켰죠.
Q. 레스토랑에서 연구소를 운영할 만한 자금이 있나요?
스페인 정부도 연구소를 지원했어요. 돈이 되니까요. 올리브오일을 예로 들어볼까요? 올리브오일 생산국에는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터키·그리스 등이 있어요. 그런데 이탈리아가 스페인에서 올리브를 사 와서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을 만듭니다. 올리브 생산량이 부족해서요. 같은 올리브를 스페인에서 오일로 만들면 3유로인데, 이탈리아에서 만들면 7유로에 팔립니다. 여기에 스페인이 열받은 겁니다. 스페인만 그런가요? 일본에서 생산하는 유자 관련 제품의 절반은 한국에서 수확한 유자로 만드는 거예요.
덴마크도 비슷한 기획을 했어요. 전 세계 최고 유기농 강국을 목표로 투자했죠. 이렇게 만든 유기농·제철 식재료를 바탕으로 노마(Noma)라는 레스토랑이 탄생했습니다(노마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다섯 차례 올랐다). 과거엔 덴마크에 요리 먹으러 간다고 하면 웃음거리였어요. 북유럽 척박한 땅에 식재료가 많으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마에 매년 100만 명이 예약합니다. 덴마크 인구가 500만 명이에요. 그래서 ‘노마 이코노믹스’라는 말까지 생겼죠.
Q. 연구 성과가 미식 문화 개선으로 어떻게 이어졌나요?
연구소에서 연구한 성과를 미식 행사에서 서로 공유했어요. 새로운 이론, 새로운 레시피를요. 미디어에 나와 홍보도 했죠. 결국 스페인 음식이 매해 빠르게 성장했던 건 이런 지식 공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니어 시절, 선배들이 레시피를 숨기던 모습과는 정반대였죠. 한국에서 처음 요리를 배울 때는 레시피를 보지도 못했어요. 선배들이 레시피를 007가방 같은 서류가방에 넣어두고 절대 안 보여줬거든요. 일이 힘드니까 금방 나가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스페인에 가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만 가지 않잖아요. 파에야도 먹고, 타파스(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에피타이저 음식. 스페인의 길거리 음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도 먹죠. 연구소의 목표는 스페인 음식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이었어요. 제가 가서 맡았던 연구도 딥프라잉(deep frying)에 관한 것이었어요. 타파스 위에 올리는 튀김이 눅눅하면 안 되잖아요. 셀리악병(celiac disease)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을 위한 레시피를 만들기도 하고요.
Q.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중국 지역 부의장직도 맡고 계십니다.
아시아 랭킹을 2012년 처음 발표했어요. 올해가 12년째죠. 그런데 첫해 50위 안에 한국 레스토랑이 한 곳도 없었어요. 무오키의 박무현 셰프가 ‘캄보디아 식당도 순위에 들었는데 한국 식당이 없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는데, 조리과 학생들이 ‘한국은 역시 안 되는 건가요?’ 식의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화가 났죠.
지금 뉴욕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 스시집입니다. 인당 1300달러예요. 뉴욕의 스시집은 500~600달러가 평균이고요. 그런데 한식당 중 가장 비싼 아토믹스가 380달러예요. 우리가 앞으로 브랜딩을 시작하면 전 세계에 코리안 바비큐가 퍼질 텐데, 이대로는 안 된다. 가격, 그리고 격을 함께 높여야 한다. 그 주제로 이야기해 보자. 그래서 시작한 게 난로회였습니다.
저는 봤거든요. 프랑스는 농업 국가로 돈을 많이 벌어요. 프랑스의 3대 작물이 밀·우유·포도인데요. 밀로 빵 만들고, 우유로 치즈 만들고,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서 농업 시대에 ‘미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어요. 일본 사케도 원래 저렴했어요. 하지만 스시 가격이 올라가니까 스시에 맞는 술인 사케 가격도 같이 올라갔죠. 왜 비싼 음식이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예요. 결국 산업적인 볼륨은 중저가 시장이 결정할 겁니다. 그런데 국가 브랜딩에 따라 전체적인 가격이 형성될 거예요. 그때 위에서 얼마나 끌어올려 주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코리안 바비큐도 (맛을 넘어) 서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한식 경험을 바탕으로 한식을 브랜딩해야 해요.
Q. 난로회의 첫 대중 행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 1·2위 레스토랑의 셰프들을 초청했어요. 이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요. 한식도 이렇게 멋있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고기구이 연구의 성과를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리기로 했어요. 그래야 한식이 이들과 동격이 됩니다. 장소도 중요했어요. 행사를 미술관이나 궁에서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리움미술관에서 공간을 기꺼이 빌려주셨어요.
Q. 한국에서 여성 셰프로 버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 저를 식당 아줌마처럼 여기더군요. 소주회사 로고가 박힌 앞치마를 두르고, 파란 고무신을 신었어요. 물이 들어와서 밤이 되면 발이 다 불어 있었죠. 아무래도 남자 선배가 대부분이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처음 한 달간은 매일 울었어요.
Q. 요리가 아닌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식품영양학과를 나왔어요. 제가 입시를 준비할 때는 4년제 조리과가 없었거든요. 부모님께서 4년제를 나와야 결혼할 수 있다고 하셔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죠. 그런데 아직 결혼을 못 했네요. 나중에 아버지 만나면 얘기해야겠어요, ‘아직까지 못 했어요!’라고. 만날 때쯤에는 했겠죠? (웃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했어요. 배우고 싶으니까. 더 잘 만들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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