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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난로회 의장 — 한식으로 여는 미식의 새 시대

매체
포브스코리아
게시일
2025. 12. 30
NANRO Foundation

난로회는 미식을 함께 즐기는 작은 모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곧 한식을 매개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지금의 난로회는 한식을 연구하고 세계화를 논의하며,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비영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최정윤 난로회 의장은 한식이 일시적인 유행이나 이국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인의 식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래 사랑받는 음식이 되기를 꿈꾼다.

난로회(煖爐會)는 18세기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숯불 화로를 중심으로 모여 음식을 나누며 풍류를 즐기던 겨울 모임이었다. 『동국세시기』에도 이러한 한양의 풍속이 기록돼 있으며, 정조가 박지원·정약용 등 실학자들과 함께 즐긴 연회로도 전해진다. 이런 난로회를 현대에 복원한 인물이 바로 최정윤 난로회·난로학원 의장이다. 28년째 셰프이자 한식 연구가로 활동 중인 최 의장은 호텔 셰프를 거쳐 스페인 엘 불리와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파운데이션에서 요리 연구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샘표 우리맛연구중심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난로회는 글로벌 푸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나누는 행사인 ‘난로 인사이트’를 여는가 하면, 헬리녹스와 협업해 고기구이와 찌개를 동시에 조리할 수 있는 캠핑 조리 도구 ‘전립투 & 스토브원’을 선보이기도 했다. 난로학원에서는 K미식을 이끌어갈 인재(난로 넥스트 펠로)를 매년 선발한다. 난로회의 ‘벗’이기도 한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는 최 의장의 추진력과 기획력을 높이 평가하며 “만나면 항상 즐거운 에너지를 받게 된다”고 전했다.

“28년째 셰프 겸 한식 연구가로 활동 중이시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인생의 방향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바뀝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아 요리사의 길을 택했어요. 건축설계사였던 아버지는 미식가이자 사진을 즐기는 감각적인 분이었고, 어머니 또한 손맛이 뛰어났어요.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직접 요리하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직업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요리는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세계 주방을 다니며 모욕과 욕설, 무시를 다 겪어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지만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셰프로서 기술을 넘어 ‘연구’와 ‘식문화’로 시선이 확장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누군가와 함께 먹는 기쁨도 있지만, 프로페셔널하게 요리를 하다 보면 그마저도 무뎌지는 순간이 옵니다. 아마 제 주방 안에서만 요리를 했다면 요리가 인간의 삶에 어떤 존재이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호주와 조선호텔에서 일한 뒤 ‘전 세계 최고는 어떤 곳일까’라는 궁금증에 스페인 엘 불리(El Bulli)에 갔고, 그곳에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기술적인 완성도에만 몰두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엘 불리와 알리시아 연구소에서 ‘한 명의 셰프가 식문화와 산업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웠어요. 그리고 ‘대중의 식생활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이를 뒷받침할 기관이 없어 귀국해 정식당 첫 헤드 셰프로 일하다가 샘표와 인연이 닿았고, 엘 불리의 방법론을 한식에 적용해 ‘장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이후 알리시아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 설립, 중국과 뉴욕으로의 확장을 거쳐 발효 명가에서 한식 문화 전반을 만들어가는 회사로 리브랜딩했으며, 현재는 샘표 우리맛연구실을 운영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을 비롯한 해외에서 한식 레스토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요?”

요즘 한식의 인기가 정말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샘표에 입사해 한식 산업을 고민하기 시작한 게 16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특히 뉴욕에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세 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정식당 같은 한국 레스토랑이라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이번에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목록에서 북미 전체 1위를 한 곳도 바로 한식당 ‘아토믹스’입니다. 정말 꿈 같은 일이죠. 물론 아직도 한식이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이색 음식이라고 여기는 시선이 있지만, 발효 음식의 건강함, 다채로운 반찬 문화 등 한식의 장점을 제대로 알린다면 일상식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거라고 믿습니다.

“난로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난로회는 아토믹스 박정현 셰프와 함께 책을 준비하던 중 ‘한식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한식 산업이 해외에서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국내에는 논의의 장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어요. ‘난로’는 18세기 조선시대에 평민부터 왕까지 고기를 구워 먹던 모임이자, 정약용·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이 새로운 시대를 고민하던 자리였습니다. 오늘날 한식 산업도 그런 전환기에 있다고 느꼈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난로회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2월 7명으로 출발했습니다. 스시처럼 상업적 잠재력이 큰 분야가 코리안 바비큐라고 보고 글로벌 산업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논의했으며, 문화 콘텐츠·금융·브랜딩·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 과정에서 표준화, 기술 존중,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민간 자격 ‘난로 구이마스터’를 계기로 영리법인을 설립했다가 비영리 사단법인 ‘난로학원’으로 전환했습니다. 핵심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고, 한식 산업에도 ‘학교’라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사업계획 없이 시작했지만, 2025년 11월 29일 설립 2년을 맞았습니다.

“현재 난로는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요?”

2024년 4월 첫 공식 행보로 리움미술관에서 ‘난로 인사이트’를 열었습니다. 행사 이후 ‘난로가 어떤 길을 가야 하나’를 더 깊게 고민하게 됐어요. 연구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해 ‘난로 랩’과 ‘난로 아카데미’를 먼저 시작했고, 이후 한국에서는 학교 설립이 쉽지 않겠다는 판단 아래 미국의 비영리 파운데이션과 펀드레이징 생태계를 참고해 미국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아토믹스 박정은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펠로십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인재들을 발굴해 창업 자금과 멘토링을 지원하고 있어요. 첫 장학생으로 아토믹스 헤드 셰프 출신 이하성 셰프가 선정돼 내년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있고, 미국에서도 업커밍 셰프 4명을 한국에 초청해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이 돌아가 한식을 실제 메뉴에 적용하면 미국 내 강력한 미식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 기대해요. 이처럼 난로 펠로십 출신들이 성장해 다시 후배를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정윤 난로회 의장
최정윤 난로회 의장은 발효의 건강함과 다채로운 반찬 문화가 제대로 알려진다면, 한식은 해외에서도 충분히 일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영재 기자

“‘한국 고기구이의 과학’ 연구를 통해 새롭게 확인한 흥미로운 데이터나 인사이트가 있다면요?”

난로학원의 첫 연구과제인 ‘한국 고기구이의 과학’을 통해 우리 고기구이 방식에 숨어 있던 합리적인 원리들을 확인했어요. 삼겹살 불판의 기울기와 홈 구조가 과도한 기름은 배출하면서 풍미는 살리는 최적의 설계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름 흐름과 열 분산을 개선한 ‘오일 로드(Oil Road)’ 기술을 개발해 불판 각도와 불 조절법까지 매뉴얼화했습니다. 이 연구는 감으로 여겨지던 고기 문화를 과학으로 축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실용화를 위해 헬리녹스와 협업한 ‘전립투 & 스토브원’으로 이어져 2025년 하반기에 출시됐어요.

“미식 평가 가이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이기도 하신데요. 2025년 한국이 중국과 분리돼 독립 지역으로 승격했습니다. 한국 지역 총괄 의장으로서 이번 변화의 의미는요?”

2024년까지 ‘월드 50 베스트’ 27개 지역 중 단일 국가로 지정된 나라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일본뿐이었는데, 올해 한국과 중국이 독립 지역으로 승격했습니다. 이는 한식의 위상 강화를 보여주는 일이에요. 세계 미식 업계에서 한국이 하나의 권역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전에는 조명받지 못했던 한국 식당들이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많아졌고, 2년 연속 서울에서 아시아 시상식이 열렸어요. 이러한 변화는 한국 외식업계에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우리 셰프들도 ‘세계가 보고 있다’는 긍정적 긴장감을 갖게 되었고, 한식을 더 발전시키려는 선의의 경쟁이 촉발되고 있어요. 독립 지역 승격은 영광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으로 느껴지며, 한국 셰프들과 미식 업계 관계자들이 한국 미식의 다양성과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선정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다면요?”

한 레스토랑이 나라의 위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어요. 월드 50 베스트를 지켜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스페인의 ‘엘 불리’가 만든 기적입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미식 강국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렸는데, 1980년대 스페인의 엘 불리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어요. 인적 드문 해변가에 자리한 작은 식당이 분자요리라는 혁신으로 2000년대에만 세계 1위를 다섯 번이나 차지했고, 14년간 미쉐린 3스타를 유지했습니다. 전 세계 미식가 250만 명이 줄 서는 ‘성지’가 되었고, 그 효과로 스페인 요리의 위상이 높아져 관광산업은 물론 경제 전반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어요. 현장에서 그 변화를 직접 보았는데, ‘한 식당이 한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의 엘 불리, 덴마크의 노마, 프랑스의 미라주르, 페루의 센트랄 등은 한 지역의 미식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신 사례예요. 지난 20년간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한국도 반드시 그 일을 해낼 것이라는 꿈을 품게 됐습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목표이자 꿈을 말한다면, 한식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세계인들의 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보고 싶어요. 늘 “외국인들도 반찬을 일상식으로 즐기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김치나 장아찌 같은 반찬이 더 이상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빵이나 치즈처럼 세계 식탁의 기본 요소가 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요. 언젠가 한식으로 우주비행사들의 식단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음식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전쟁이나 재난, 혹은 우주 같은 한계 상황에서 한국의 발효 음식이 인류를 살리는 영양원이 된다면 얼마나 뜻깊을까 생각합니다. 음식의 힘을 믿는 만큼 언젠가 이런 꿈이 이루어져서, 한식이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인 한세엠케이를 이끌고 있는 김지원 대표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와 르 코르동 블루,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요리 아카데미 츠지원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예스24에 입사해 경영훈련을 받은 뒤 2019년 한세엠케이 대표직에 올랐다. 한세엠케이는 현재 모이몰른, 나이키 키즈, 버커루, NBA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 라이프웨어를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비즈니스로 나아가고 있다.
· 원문: 포브스코리아, 이정은 기자, 2025-12-30.
· 링크: forbeskorea.co.kr